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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마음. 이 땅에 진정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지려나... 12.3내란 사태 이후 몸도 마음도 얼어붙은 지난 겨울부터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온택트로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 하나는 '논어 1일 1문장 쓰기'와 '시 삼백수 필사하기'다.
시대가 회색빛이어서 어딜 가도 청명한 빛을 받을 수 없고, 사람들과의 빈번한 접촉은 법과 사회를 부정하고, 심지어 분노와 우울이 교차하곤 한다. 뜻을 모아 시작한 글 미팅은 매일 새로운 활력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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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홍매화?가장 크게 망울진 매화꽃 봉오리, 아직 개화 전이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 박향숙
삼월이 되자, '진 예금이율계산기 짜 봄 이로소이다'라는 환호성과 함께 봄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올라왔다. 남도에 도착한 봄을 가져와서 꽃샘바람을 잠시라도 누르고 싶은 벗들과 함께 순천 낙안읍성과 선암사로 향했다.
특히 선암사의 선암매, 홍매화는 매화 중의 으뜸이라는 풍문에 직접 만나고 싶었다. 이외에도 조계산의 풍경, 한국불교 현대해상보험설계사 태고종의 본산,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의 별칭에 혹하여 남쪽의 봄을 찾아 나섰다.
선암사의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의 산책로와 그 옆에 흐르는 개울소리는 완연한 봄 기운과는 다소 떨어져 찬 기운이 가득했다. 3월 초면 시작되는 남도의 꽃 소식과 꽃 축제 역시 1~2주 연기되었다 했다. 나무들도 꽃들도 잠을 깨지 못하 LTV DTI 고, 비몽사몽하며 눈꺼풀만 떴다 감았다 하는 모습이 마치 요즘 대한민국의 모습처럼 불안해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선암사의 승선교(보물 제 400호)위에 서서 부처가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대웅전 앞을 포함해서 선암 매화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원통전 등 각 건물에 는 등화가 가득해서 아직 피어나지 않은 매화 꽃을 대신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선암사 하면 우리 시대의 대표 문인 조정래 작가의 출생이 생각나는데, 선암사에서 낙안읍성으로 가는 길의 이름 역시 '조정래 길'이었다. 비록 선암사의 홍매화 개화 풍경은 마주하지 못했지만, 이른 봄 길에 열려진 선암사의 품 넓은 자비의 마음을 충분히 느꼈다.
▲ 낙안읍성마을전경?금전산자락 아래 초가지붕들의 웃음소리가 정겹다
ⓒ 박향숙
순천의 민속마을 낙안읍성(순천시 낙안면 남대리)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방문이다. 처음 갔을 때, 석양 빛에 비춰지는 마을 초가지붕들의 모습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 백년 전 세상으로 되돌아간 듯했었다. 그 여운이 남아서 항상 다시 가고 싶은 여행 방문지 중의 하나였다.
▲ 낙안마을 내 큰 빨래터?연초록으로 늘어진 수양버들가지아래 마을의 공동 빨래터
ⓒ 박향숙
마을 앞에서 유명한 꼬막정식 한 상을 대접 받고, 읍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 마을은 아직도 100여 세대의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고 남쪽 지방 특유의 주거양식-부엌, 툇마루, 토방, 헛간, 축사 등-이 그대로 남아서 보존되고 있다고 했다. 마을 한 가운데에 연초록 잎으로 봄을 부르는 커다란 수양버들과 그 아래 공동 빨래터 바위에서는 그 옛날 아낙들의 재미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낙안읍성마을내 동헌?<사무당>이라는 헌판을 걸고 있는 동헌 담장 앞 홍매화
ⓒ 박향숙
다행스럽게도 선암사 홍매화 대신 이곳 동헌담장 앞에서 매화 꽃을 만나 풍경 사진 찍었다. 한 시간 넘게 성벽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을 둘러보았다. 불의한 세상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달래가며 초가지붕에 눈높이를 맞추니, 잠시라도 세상 시름을 잊는 듯했다.
동헌대청 마루에 걸려있는 사무당(使無堂)의 뜻-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백성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도 헤아려보고, 정월 대보름에 제를 올린다는 임경업 장군의 비각도 꼼꼼히 보았다. 안쪽 마을에 있는 도예공방의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마저도 신선하게 느껴질 만큼 참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성벽 위로 올라가서 한 바퀴를 돌면서 바로 앞에 보이는 금전산(金錢山, 금둔사 위치)을 보며, 저곳에 금이 있다면? 이라는 우스운 생각에 혼자 웃었다. 성벽 길을 따라 마을로 통하는 길로 내려오면서 마주치는 마을의 전경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절경이다. 함께 간 지인의 고향이 순천이었는데 그녀의 어린 시절, 소풍지로 자주 갔던 선암사와 낙안읍성에 대한 추억을 듣는 것도 별미였다.
▲ 낙안마을내 목화밭?후배가 따 먹었다는 목화열매가 만든 두번째 목화꽃
ⓒ 박향숙
"언니, 목화 열매 먹어 봤어요? 목화밭에서 아직 덜 여문 열매를 따서 먹곤 했죠. 매끈하고 둥그런 목화 열매를 까면 안에는 달콤하고 싱그러운 과일 같은 맛이 나는 하얀 속살 얼굴이 보여요. 부드러운 목화의 속살을 꺼내서 한 입 깨물면 갈증도 가시고 배고픔도 잊게 해줬죠. 한참 서리를 하다 보면 멀리서 작대기를 들고 ?아 오던 밭 주인의 불호령 소리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치고요. 그런 꼬마가 이제는 오십 중년, 하얀 솜 뭉치가 되어 목화 밭을 거닐어보네요."
후배의 말을 주워 담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하얀 목화 솜꽃이 활짝, 대롱거리는 목화 줄기들이 가득했다. 농촌 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왠지 마을 골목을 걷노라면, 내 태생 고유의 무늬가 드문드문 인사하듯 했다. 초가지붕, 이엉, 600년이 넘는다는 은행나무와 복을 기원하는 볏짚 줄, 장독대 가족들, 나무지게, 절구방아통, 여물통 등 민속마을이라 칭할 만한 진귀한 물건들이 많았다.
봄은 어디서나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진짜 봄의 향기인지 맡고 싶다면 당신 마음 속 안테나의 방향을 잠깐만 돌려보시라. 도시의 하늘 높은 빌딩 숲에서 맞는 봄 손님을 쳐다보려면 당신 목을 길게 늘이며 멀리 바라봐야 하는 눈동자의 수고로움에 미안해질 것이다.
잠시라도 빌딩 거리를 벗어나, 동네 공원 들판도 좋고, 아파트 화단도 좋고, 좀 더 마음을 열고 주택가 골목길을 애써 찾아가도 좋다. 아마도 당신의 발걸음이 채 닿기도 전에 '진짜 봄이다'라고 소리치며 반기는 새들과 꽃들과 나뭇잎 새순들이 가득할 것이다.
때마침 지인께서 올리는 시 필사의 아침 톡이 울린다. 박노해 시인의 <목화는 두 번꽃이 핀다>였다.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
- 박노해
꽃은 단 한 번 핀다는데
꽃시절이 험해서
채 피지 못한 꽃들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꽃잎 떨군 자리에
아프게 익어 다시 피는
목화는 한 생애 두 번 꽃이 핀다네
봄날 피는 꽃만이 꽃이랴
눈부신 꽃만이 꽃이랴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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